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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창세기 12:5-9 하나님 나라를 사는 법

by 셀라지기 2026. 2. 17.

하나님 나라를 사는 법

 

창세기 12:5-9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드려야할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곳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바꾸어 말씀드리면, 천국이 무엇입니까?

 

천국은 내가 원하는 것이 가득한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를 인정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되면,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풀무불과 사자굴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우리에게 부딪쳐오는 역경을 

강하고 담대히 이기고, 빛을 발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한 주간 우리가 씨름해야할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다스려 주시길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좌절하고, 낙망할 만한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면,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방점으로 소유하려고 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실제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이제는 좋은 일만 가득한 상태로 천국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오해하는 일까지도 발생합니다. 

 

 

오늘 본문의 5절의 말씀도 

이러한 잘 못된 이해 안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우리는 5절을 이렇게 읽습니다.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침내’도 없고,
그 문장에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완료의 뉘앙스도 없습니다.

 

 

 

본문은 단순히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이는 결과의 선언이 아니라,
과정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도착하면 끝이다”, “들어가면 평안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좇아 걷는 그 과정 자체가 신앙임을 가르칩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복주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아브람처럼 이 믿음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작게 여겨지는 일은 당연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겨자씨로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우리 안에 심으면, 

하나님께서 많은 새들의 거처가 될 만큼 

큰 믿음으로 자라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오늘을 믿음 안에서 살아내시길 축언합니다. 

 

 

 

6절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만,
그 땅은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위험도 있었고, 긴장도 있었고,
아브람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오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반대로 말합니다.

 

말씀을 좇아 들어간 자리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진 문제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입니까?!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눈에 보이는 선악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할지? 

아니면, 우리의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지. 를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나라를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겨우 도착한 가나안에, 

그곳에 이미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7절과 같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십니다.

 

보시면, 아브람이 무언가를 이룬 것은 없습니다. 

아브람은 그저 하나님 말씀을 따랐던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 말씀은 즉각적인 소유가 아닙니다.
아브람의 생애 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그 말씀 앞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첫 시작은 그러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이 커지면 커질 수록, 어떤 의심도, 어떤 불신도 

말씀 앞에 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오늘 아브람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아브람은 또 하나의 선택을 합니다.
제단을 쌓고, 동시에 장막을 칩니다.

 

제단은 영원을 향한 결단이고,
장막은 현실 속에서 말씀 위에 살겠다는, 삶의 태도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영원을, 제단에 두었고,
자신의 삶은, 장막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문제 앞에서도 

제단을 앞에서, 현실을 도피하지도 않았고,
또 현실의 문제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요즘 성도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단만 있는 신앙은 현실을 잃어 버립니다. 

삶의 현장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녀들까지 외면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단들이 보통 그렇지 않습니까?

 

또 장막만 있는 삶은 소망이 없습니다. 

풍랑이 불어오면, 그 풍랑에 휘청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 위에 서지 못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현장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풍랑에 휘청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 건물에 묶어두시지도 않았고,
세상 풍랑에 떠밀리도록 두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단과 장막을 함께 세운 사람에게
그 현장의 의미와 사명을 열어 주십니다.

 

 

 

잘 와닿지 않는다면, 

우리의 처음 신앙, 처음 사랑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현장의 영혼들을 놓고 기도하며, 

현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고, 

빛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며, 

소금이 되기 위해 수고했던 일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우리는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이들을 

우리를 보면, 신자는 정말 우리와 다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열심일까?

염려, 걱정이 없을까?

어떻게 저렇게 강하고, 담대할까?

 

우리 안에 천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제단 위에 장막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의 법칙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그 땅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선언입니다.

 

 

염려가 기준이 아니라,
다수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언젠가 도착할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다스리는 방식입니다.

 

문제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말씀을 좇아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가나안 사람이 여전히 있는 그 자리에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장막을 치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삶이 천국을 사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며,
우리가 지금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즉 우리의 현장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제단 위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서 현장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땅을, 이 시간을, 이 삶을 너에게 주겠다.”

 

이를 믿고, 돌아오는 한 주,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찾고, 구하고, 두드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언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되심을 나타내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결과만을 바랐던 우리를,
다시 말씀 앞에 세워 주심에 감사합니다. 

 

제단을 붙들게 하시되
현장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현장에, 서 있으되
하나님의 나라를 잊지 않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번 한 주,
현장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빛과 소금이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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