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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못들어본 본설 창세기 12:1-5 신앙의 여정

by 셀라지기 2026. 2. 4.

창세기 12:1-5 신앙의 여정

 

신앙의 여정

창세기 12:1-5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세기의 담겨 있는 4명의 인물 중 

첫 번째 인물이 아브람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인 우리에게, 

아브람의 여정은,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 아브람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가나안으로 출발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반응이 가능했을까?를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의 아브람 상황을 짚어 보겠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아브람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전승에 의하면, 하란에 정착하게 된 데라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을 깎아서 판매하는,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지 않았으니, 

어느정도 이해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아브람은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어린 아브람이 

그 나무로 만든 우상을 전부 부수었습니다. 

 

그 후에 집으로 돌아온 데라가 

부서진 우상들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데라가 생각할 때는

어린 아브람이 장난치다가 부수었다고 생각했는지, 

아브람을 교훈하기 위해 

“누가 조각들을 부수었지?”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어린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에게 

우상들이 서로 싸우다가 부수어졌어요.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데라가 어의없어, 

“어찌 나무로 된 우상이 스스로 싸울 수 있느냐?!”

라며 화를 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그렇다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는 일은 옳습니까?”

라는 책망으로, 데라를 일깨웠다는 전승입니다. 

 

이렇듯이 아브람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켰던 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으로 성장한 아브람은 

하란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5절과 같이, 

가나안으로 함께 오게 된, 그의 많은 식솔들과 재물들을 볼 때, 

그가 하란에서 부자였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란의 아브람은, 그 지역 사람들이 볼 때에

하나님께 복을 받아, 부자가 된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 아브람의 나이가 드러납니다. 

75세입니다. 

 

당시는 가족 단위로 모여 살았기 때문에, 

아브람 주변의 친인척들은 대부분 자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녀의 자손까지도, 보고 있었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75세의 아브람은 

다른 이들보다 신실한 삶을 살았음에도 

자녀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자녀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던 시대입니다. 

 

아마도 잘난 아브람이, 거북했던 친인척들은, 

아브람 뒤에서 그에게 자녀가 없음에 대해, 수근거렸을 것입니다. 

 

신실한 척 하면서, 

하나님, 하나님 하더니, 

뒤에서 얼마나 못된 짓을 했기에, 

저렇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는가?

 

아브람은, 주변의 비아냥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문들로 인해 

아내 사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씩 마음이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도움을 받던 친인척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에, 

아브람은 자신의 마음을 둘 곳이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서 

아브람에게, 갈대아의 화려한 문화와 

하란에서의 성공은, 의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날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아브람은, 어린 날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어린 자신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향하던 기억 말입니다. 

 

창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가 갈대아 우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하란에 머물렀던 기억입니다.

 

아브람은 고난 가운데, 그 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란에 머물렀을까?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 맞았을까?

 

그리고 그때, 오늘 본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내가 너를 복이 되게 하겠다!

너를 축복하는 자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 내가 저주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아브람의 상황이 맞다면,

이 말씀은, 아브람에게 참 소망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친인척도, 가족도, 아내도,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정확히 아시고, 

그에게 딱 맞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람은 이 말씀을 받은 후에, 

하란의 성공을 뒤로하고, 가나안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출발하기 전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믿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게 합니다.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사람에게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닿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그 말씀에 관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좇아,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이 시간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가 가나안에만 속한다면,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우리로 복되게 하시며, 

세상 그 어떤 배경이 없어도, 

우리를 축복하는 자 하나님이 복을 주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 하나님이 저주해 주시는 

하나님이 배경이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 위에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하나님의 약속이 나에게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의문의 지점을,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향했던 

그 여정의 상황을 생각해 봄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말씀을 좇아 떠난, 아브람의 믿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 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라도 가족들을 설득해서 떠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거부였습니다. 

그의 식솔들의 수는, 못해도 300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에서 그의 사병이 318병인 것을 보면, 

그 사병들의 가족들, 또 아브람의 양들을 치던 종사자들, 

그리고 가정을 돌보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생각해 보면, 

그 수가 이천 명에 근접하지 않았겠습니까?

 

더하여, 롯과 그의 식솔들까지 아브람을 따랐습니다. 

 

자신만이라면, 결정이 쉬울 수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든,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을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식솔들을 생각하니, 

가나안으로 향하는 마음에, 불안이 엄습합니다. 

 

하란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가 

약 900km에 해당합니다. 

 

식솔들과 가축들까지 고려하면, 

약 90일은 소요될 거리입니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음성을 

아브람만 듣고, 약 이천명의 사람들이 가나안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한 10일쯤 지나니, 

가축들이 먹을 것을 찾아 무리를 일탈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20일쯤 지나니 물이 떨어져서, 오아시스를 찾아야 했습니다. 

 

30일쯤 지나니 식량이 얼마 없어서, 도시를 찾아 우회해야 했습니다.

 

40일쯤 지나자, 식솔들이 아브람의 눈치를 봅니다. 

 

우리는 앞으로 50일 후면, 도착할 것이라 계산할 수 있지만, 

당시 그들은, 언제 도착할지 예측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브람이 그 여정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갖게 되겠습니까?

 

아브람이 아닌 어떤 이들은, 

가족들과 싸우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이켰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가나안으로의 여정 내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가는 이 길이 맞습니까?

주님 복주신다는 길이, 이 길이 맞습니까?

 

가축들이 견디지를 못하는데 

이길이 맞습니까?

 

물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이 길이 맞습니까?

 

식량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맞습니까?

 

그에게 있어서 약 90일의 여정은 

갈 바를 알지 못해,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 바라보며, 

 

기도함으로, 자신의 의심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자신을 세워, 

그 힘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하란의 체질을 벗고,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내용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 앞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을 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 길로 결국 이스라엘, 이긴 자가 되어, 

지금까지도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며, 

하늘에 이름을 새긴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과 물질을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참 만족을 얻을 수 없기에, 

아브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와 같이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와 함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예수 믿기 전보다, 더 삭막한 주변의 눈빛들과 

그럼에도 선을 행해야 하는,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당해야하는 손해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의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길이 맞는가?

남들은 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다른 이들은 여행다니며, 즐겁게 사는 것 같은데,

과연 이 길이 맞는가?

 

괜히 나로 인해, 가족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의 여정을 택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말씀을 지시하고 계신, 아브람을 봐야 합니다. 

아브람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축들의 신음소리, 

식솔들의 불신의 소리, 

가족들의 의심의 소리들을 뒤로하고,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습니까?

 

저는 아브람에게도 의심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는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심을 토로하며, 

 

복 주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다시 힘을 얻어, 오늘을 말씀 위에서 살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즉, 주변의 의심과 원망들은

아브람으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믿었는데, 

현실에서는 복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믿는다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며, 

도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신앙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민하고, 염려한다고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토로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오늘이 기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일을 소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하여 제가 속한 현장에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러한 황폐한 제게, 

주님이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소망이 없던 제게,  주님이 소망이 되어주셨습니다. 

 

2000년 전에도, 주님은 그러하셨습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찾아, 

그들의 병을, 가난과 문제를, 주님이 친히 질머지시고, 

주님이, 그들의 구원과 소망이 되어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도, 이 시간에도, 나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다시 가족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지인들과 주변인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저를

주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셔서, 

염려, 걱정 속에서 현재를 잃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기대와 소망을 품고,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다윗을 일으켜 세우신 주님, 

 

우리 앞을 막고 있는 골리앗과 같은 문제를 향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나아가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의심이 들 때마다 

이렇게 복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아브람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 모두가 주저하는 그 길을 확신으로 갈 수 있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길은 다릅니다. 

 

세상의 길과 달리, 

하나님의 길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 길을 오직 

하나님의 사람만 걸을 수 있습니다.

 

어찌 노예가 총리가 되며, 

홍해가 갈라져 길이 생기며, 

목동이, 왕이 될 것이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아브람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같은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시작될 것입니다. 

 

돌아온 한 주간,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고, 

어떤한 순간과 상황에도 

하나님을 기대하는, 매 순간이 되시길 축언합니다. 

 

함께 찬양드리겠습니다. 

 

은혜

 

기도하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처음 우리를 부르셨던 그 음성을 붙잡습니다. 

 

아브람이 갈 봐를 모르고 길을 걸으며
날마다 주님을 더 깊이 의지했듯,

우리의 흔들림과 두려움도
주님께 드리는 기도가 되길 원합니다. 

 

가족과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뜻을 선택하게 하시고,
손해처럼 보이는 길 위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나아가게 하옵소서.

 

한 주간의 우리의 삶이,
하란을 떠나는 순종이 되게 하시고,
가나안을 향한 소망의 발걸음이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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