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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못 들어본 이야기. 창세기 11:27–32 갈대아 우르에 머무를 것인가, 약속의 땅으로 떠날 것인가?

by 셀라지기 2026. 1. 26.

갈대아 우르에 머무를 것인가, 약속의 땅으로 떠날 것인가?

 

갈대아 우르에 머무를 것인가? 약속의 땅으로 떠날 것인가?

 

창11:27-32

 

27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30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창세기에는 네 가지 사건과 네 명의 인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은
네 가지 사건의 마지막 부분으로써
바벨탑 사건과 

아브람의 부르심을 연결하는 지점입니다.

 

바꾸어 표현하면, 

본문은 바벨의 혼돈에서
믿음의 여정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읽으면, 

시선이 머물게 되는 두 문장이 있습니다.

 

먼저는 31절 하반부에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다음은 30절에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입니다.

 

이 두 진술이, 우리로 하여금 본문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두 진술을 중심으로 

“갈대아 우르에 머무를 것인가, 약속의 땅으로 떠날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본문이 속해 있는 11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바벨탑 기사 이후에, 셈의 족보가 다시 등장하고, 

오늘 본문인 데라의 이야기가 덤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히브리 이름의 원어를 살펴온 우리에게 

이 부분은 의미심장하게 들려질 것입니다. 

 

 

셈의 뜻이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11장의 문맥은 

바벨탑을 쌓은 자들의 계보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셈의 계보가
나누어 지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셈의 계보입니까?

그 계보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성경적으로 이 뜻을 설명하면, 

예수 즉 구원이, 땅 우리에게 오는 길이, 

셈의 족보로 보여지기에, 셈의 족보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셈의 자손 중에
믿음의 조상, 아브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셈의 자손 즉 그 이름을 가진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스라엘, 이긴 자의 조상이 되는 

이야기의 시작점이 본문입니다. 

 

 

 

 

 

왜 이러한 내용이 우리에게 중요합니까?

 

우리에게도, 예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긴 자로써, 우리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서론에서 말씀드린 봐와 같이 

두 진술을 중심으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 머문 내용입니다. 

 

데라는 아브람의 아버지입니다. 


데라의 이름 뜻은 머뭇거림, 지체함, 방황입니다.

그의 이름이, 그 자신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가나안은 ‘낮아지는 땅’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낮아진 자들을 위해 일하시는 곳이며,
내 힘과 노력이 아닌, 예수께서 구원이 되어주시는 땅입니다. 

 

 

 

그러나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갈대아가 당시 가장 발달된 문명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우르’는 불, 빛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갈대아 우르를 오늘로 비유하면
화려한 네온싸인이 가득한, 대도시의 야경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온갖 죄악이 만연합니다. 

 

데라는 그러한 문명과 인프라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 기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약속을 향해 가다가, 

갈대아 우르에 멈추었고, 

 

그 이후로 그의 이야기도 성경에서 멈춰졌습니다. 

 

갈대아 우르의 사람들과 함께 

데라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반면, 데라의 아들인 아브람은 달랐습니다. 

 

아브람의 이름 뜻은, 높은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브람은 75세가 되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당시 자녀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갈대아 우르의 화려한 문화가
아브람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결핍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 위에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네가 복이 될지라”

 

믿음을 붙잡은 아브람은 

가나안에서 100세에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즉 이긴 자 이야기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데라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만 말씀하셨습니까?

 

이유는 분명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75세의 아브람의 믿음에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고

홍해 앞의 모세의 믿음에 “바다가 갈라질 것” 말씀하셨고

골리앗 앞의 다윗의 믿음에 “물매 돌을 던지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들려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종이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내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세상은 포기한 현장에서 

이스라엘, 즉 이긴 자의 이야기를 쓰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가나안으로 부르십니다. 

지리적 가나안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장에서 세상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곳이 

우리가 부름 받은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이 창대케 하리라!”

 

이 말씀을 못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지금 제 상황, 처지를 모르십니까?

하나님 제 나이를 모르십니까?

겨우 오늘을 견디고 있습니다. 

무슨 이름을 창대케 합니까?’

 

이러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들에게서는,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브람, 다윗,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은 자들은

그들의 현장에서 이긴 자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배경이 되어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믿는다고는 말씀합니다. 

 

하지만, 진실로 믿으면, 다릅니다. 

 

오늘을 기대하게 됩니다.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그래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즉 어제에 지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허황된 기대를 갖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감동한다면, 

그 감동을 좇아 믿음으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살아 봐야, 그 맛을 알지 않겠습니까?!

 

 

 

 

 

저는 쌍둥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저에게는 큰 믿음의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쌍둥이는 지방 대학 출신입니다.

 

그러니 세상은 ‘너희가 어떻게 좋은 직장을 얻겠냐?’

라며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처형은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명퇴하는 대기업에서 

얼마전 승진까지 하며, 지금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내 역시 ‘네가 무슨 영어 공부냐?’ 

판단하는 세상에게 지지 않고,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포기할 만한 상황과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쌍둥이가 믿음을 붙잡자,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그녀들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끝까지 겸손해야합니다.

 

데라처럼 가나안으로 가다가, 

하란에서 멈추면 안 될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고, 

소망 가운데 더욱 하나님을 기대하며, 

 

매일을, 세상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길 축언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로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긴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같은 길 위에 있었지만,
한 사람은 세상적 판단으로 머물렀고, 

한 사람은 말씀의 감동을 좇아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길을 좇는 자들입니다. 

 

중간에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많아서, 경력이 부족해서,,,

그러니 이쯤이면 되겠지… ’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75세, 모세는 80세 임에도, 

그들이 믿음을 붙잡자, 

그들에게서 이긴 자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하나님께 불가능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요?

 

현장에서 빛을 발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요?

 

믿음으로 오늘의 현장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까지지,,, 라는 세상에 판단에 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여러분의 이야기도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다 이루었다! 라는 이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일어나서, 

현장을 기대함으로 정복하며, 

꿈을 꿈으로 도전하여

 

자신의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우리 모두의 한 주가 되길 진심으로 축언합니다.

 

 

함께 찬양 드리겠습니다. 

두려워 말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머뭇거리다 멈추는 데라의 길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떠났던 아브람의 길을 좇게 하시고, 

 

현실의 한계가 아니라
주의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을 주셔서,
한 주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스라엘, 이긴자의 이야기를 지속하게 하옵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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