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에 바라봐야 할 곳
창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함께 상상해 보면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현재의 미국의 뉴욕과 같은 도시가
당시의 갈대아 우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람은 큰 부를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안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람은 큰 부를 얻었기에,
어려운 친인척들이 성심으로 도왔습니다.
그런데, 75세가 된 아브람에게
여전히 자녀가 없자,
그들은 아브람을 비호하기 보다는
뒤에서 수근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업까지 했던 아브람입니다.
친인척의 배신이 아프긴 했지만,
견딜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 사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65세까지 자녀가 없었던 것에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어던 이들이 자신들을 배신하자,
더 이상 갈대아 우르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복이 되게 하고, 창대케 하리라!
아브람은 그 음성을 따라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떠났습니다.
가나안으로 여정 가운데
설렘과 부담의 양가적 감정으로
출발한 여정이었지만,
점점 어려움들 커졌습니다.
자신의 주장으로 출발한 여정입니다.
그러니 동행자들에게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토로할 수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아브람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 토로 했습니다.
가나안 여정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람은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가나안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기로 결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제단 뒤에,
자신의 장막을 세웠습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 위에,
자신의 삶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믿음이라는 반석 위에 선
신자의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신자에게는 정말 중요합니다.
만약 장막을 세운 후, 제단을 쌓는 다면,
우리의 현재 상황과 현장, 사업, 직장 등은,
우연의 결과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우연의 상황 가운데
내 편이 되어주셨으면 하는 도구와 같은 신이 됩니다.
하지만, 제단을 쌓은 후, 장막을 쌓는다면,
우리의 상황과 현장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사명의 장소가 됩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배경 삼아,
비전을 꿈 꾸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오늘을 기대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표현하면,
내 삶에, 하나님이 주인되실 때,
성경의 기록된 위대한 선진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현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제단을 먼저 쌓고,
그 위에 우리의 장막을 세워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해 계획 놓으신
우리의 이야기가,
현장에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가나안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닫혔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비가 오지 않습니다.
열흘 쯤 지나자, 푸르렀던 들판이 메말랐습니다.
이십일쯤 지나자, 가축의 울음소리도 말라갔습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신 그 땅에,
기근이 온 것입니다.
어느날 저녁,
아브람은 장막 밖에 앉았습니다.
건조한 바람에, 먼지가 쓸려다녔습니다.
아브람 곁으로 사래가 다가왔습니다.
“내일 부터는 가축들에게 줄 먹이가 없어요…”
아브람은 아내에게 어떤 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약속만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너로 복이 되게 하겠다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
하지만, 자손은커녕
먹을 양식까지 걱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며칠을 더 버텼습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길 선택했습니다.
애굽은 나일강으로 인해,
기근에도 풍요로운 나라였습니다.
애굽에 가까이 이르자,
아브람에게 불안이 일어났습니다.
사래가 여전히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아내를 보면,
나를 죽이고 그녀를 데려가겠지…
자신이 죽는 것 보다,
잡혀가 살아야 하는 사래가 걱정이 됩니다.
하루 이틀,,, 걱정은 불안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안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자,
그는 자신의 마음을 아내에게 전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당신을 나의 누이라 해야할 것 같아.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어.
사래는 아무말 없이
그저 아브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람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바로의 대신들이 사래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궁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에 왔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왔습니다.
버텨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버틸 수 가 없었습니다.
가족들과 가축들까지 돌아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왔습니다.
주님 저는 제 염려대로
아내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내를 빼았겼습니다.
주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더이상 살 소망이 없습니다.
제게는 자녀도, 아내도 남지 않은 것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신다면,
아내를 찾게 해 주세요.
즉시 가나안으로 돌아가,
기근에도 머물며,
주님께서 보여주실 일들을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가 보겠습니다.
이처럼 아브람이 자신의 과오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의 집에 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바로의 후궁 전체가 그날에 앓아 눕게 된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궁을 덮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건에
진실을 찾아 헤매던 바로가
사래의 사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재앙은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했습니다.
그가 아브람을 불렀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속였느냐?
왜 그를 네 아내라 하지 않았느냐?
아브람은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바로는 사래를 돌려보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을 아브람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람은 사래를 지키지 못 했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사래를 돌려주었습니다.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을 알게 된 아브람은,
가나안으로 돌아섰습니다.
기근의 위협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기근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자신의 인생을 붙들고 있으니,
반드시 기근 가운데
셍명의 길을 내실 것임을, 기대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의 본문을
“거짓말하지 말자”는 주제의 설교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참 안타까웠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거짓말 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넘어져,
아내까지 외면해야하며 거짓된 삶을 살게 되었는데,
거짓말은 나쁜 것이다! 로
본문을 취부하는 설교를 들으며 자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하나님을
벌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만났고,
잘 못 하면 지옥가고, 잘 해야 천국가는
냉엄한 심판자로 여기게 되어,
매 주 교회는 출석하면서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이 이런 내용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우리가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심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브람은 살기 위해서 아내를 내어주었지만,
하나님은 살리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시겠습니가?!
우리는 결코 아브람보다 나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현실가운데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택할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셔서,
구원의 길을 내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우리의 잘못으로 문제를 만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아브람을 도운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도울 것이니,
일어나, 함께 가자!
지금 이순간 까지
세상을 택하셨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 아브람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가나안을 걷게 하실 것입니다.
기근을 이기게 하시고,
홍해에 마른 땅을 내어주시고,
골리앗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의 아버지되심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를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실패한 그 지점에서 나를 바라 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너는 내 자녀다!
그러니 흔들리지 마라!
바로가 우리의 두려움이,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신자들이, 바로 아래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날 바로는 돈일 수 도 있고,
노후의 안정 일 수도 있고,
명예, 관계 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로에게 주눅들어,
이러한 압제 아래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원래 이런 것이라고 착각하며,
죽음으로 위협하는 바로 앞에 종노릇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의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 봐라!
내가 반드시 너를 도울 것이다!
바로를 꺾고, 기근에서 100배의 결실을 얻게 하며,
골리앗 앞에서 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케 할 것이다.
오늘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믿음의 선진들이 살아간, 천국의 이야기를
우리도 시작하게 하실 것입니다.
돌아오는 한 주
이 믿음의 길을 선택하심으로
매일 하나님을 기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언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기근 앞에서 흔들렸던 아브람처럼,
우리는 현실의 두려움에 무너집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바로가 되어 압제할 때,
재물과 미래의 불안이 위협할 때,
우리의 시선을 들어,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실패의 자리에서 주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고,
연약함 속에서 주님의 강한 손을 경험하게 역사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눈을 들어 보라 (창 13:14-18) (0) | 2026.03.04 |
|---|---|
| 믿음과 선택 창13:1-13 (1) | 2026.03.04 |
| 창세기 12:5-9 하나님 나라를 사는 법 (0) | 2026.02.17 |
| 못들어본 본설 창세기 12:1-5 신앙의 여정 (1) | 2026.02.04 |
| 못 들어본 이야기. 창세기 11:27–32 갈대아 우르에 머무를 것인가, 약속의 땅으로 떠날 것인가? (1) | 2026.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