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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의 설교

예수 믿는 사람은 정말 무조건 용서만 해야 할까?

by 셀라지기 2026. 1. 20.

예수 믿는 사람은 정말 무조건 용서만 해야 할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 앞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질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잘못한 사람을 끝까지 품기만 해야 하는가?
징계와 출교는 사랑과 모순되는 것인가?

이재철 목사의 이 설교는 이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출교란 무엇인가 – 버림이 아니라 치료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바울은 음행한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라”고 말합니다.
이는 저주나 방임이 아닙니다.
교회 안의 빛의 세계와 교회 밖의 어둠의 세계를 대비하여 공동체로부터의 출교, 즉 교회적 징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출교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출교는 파괴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바울의 사랑은 왜 징계를 명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출교를 명한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로 그 사도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동기와 목적입니다.
출교는 인간의 분노나 정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행동입니다.

사랑이기 때문에 침묵하지 않고,
사랑이기 때문에 방치하지 않습니다.


‘육신을 멸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

바울이 사용한 ‘육신’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사르크스입니다.
이는 단순히 몸이나 질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너희는 신령한 자가 아니라 육신에 속한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이다.”

즉, ‘육신을 멸한다’는 말은
본능과 감정, 욕망 중심의 삶을 끝내게 하는 영적 각성을 의미합니다.
출교는 그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영적 성숙으로 다시 서게 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은혜입니다.


작은 죄는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린다

바울은 죄를 ‘누룩’에 비유합니다.
누룩은 적어 보여도 결국 온 반죽을 변화시킵니다.

한 사람의 방치된 죄는
그 사람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이것은 정죄가 아니라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결단입니다.


순결한 삶이란 무엇인가 – 두 단어

바울은 순결을 두 단어로 설명합니다.

1. 순전함 (에일리크리네스)

‘태양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
숨고 싶은 것이 없는 삶입니다.

2. 진실함 (알레데이아)

‘감추지 않는 삶’
포장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는 태도입니다.

순결은 완벽함이 아니라
빛 가운데 서 있으려는 용기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설교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교회는 제도도, 건물도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사랑 없는 징계는 폭력이 되고,
순결 없는 용서는 방종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과 순결이 함께 있을 때
교회는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쇼윈도가 됩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회의 모습

세상에는 유혹하는 공간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성찰하게 하는 공간은 드뭅니다.

교회가 사랑과 순전함, 진실함을 보여줄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기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빛 앞에 서게 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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