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원의 확신을 가졌던 사람도 믿음을 버리고 떠나는 걸까?

교회에 오래 다니다 보면 이런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저 사람은 그렇게 신앙이 좋아 보였는데, 왜 떠났을까?”
“분명 구원의 확신도 있었는데, 어떻게 믿음을 버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믿음을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믿음과 미신은 어떻게 다른가
이재철 목사는 설교의 초반에서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목사님은 믿음과 미신의 차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 차이는 ‘자기 부인’에 있다.
미신은 신을 이용합니다.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신을 달래고 설득합니다.
그래서 미신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변화가 없습니다.
굿을 백 번 해도 삶은 그대로입니다.
반면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절대자이심을 인정하기에,
사람은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람을 새롭게 만듭니다.
왜 교회는 끊임없이 흔들릴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삶에서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공동체 안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생깁니다.
목사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묻습니다.
“혹시 우리가 믿음을 **미신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반복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듣는 귀는 많지만, 깨닫고 순종하는 믿음은 적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두려워했던 것
놀라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초신자들이 모인 데살로니가 교회에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왜일까요?
바울은 압니다.
복음의 역사가 클수록,
사람은 쉽게 자기 공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도
정작 나 자신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
믿음의 사람일수록,
더 깊은 자기 경계와 자기 부인이 필요하다는 고백입니다.
교회 안팎의 ‘악한 사람들’
바울은 두 번째 기도 제목도 요청합니다.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달라.”
여기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 교회 밖의 악한 세력
복음을 핍박하고 조롱하는 외부의 공격 - 교회 안의 악한 세력
처음엔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명예욕, 물질욕, 독선에 빠져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위험은
항상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이 설교의 핵심 문장입니다.
바울의 말이자, 성경의 선언입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구원의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바울의 전도 여정 하나하나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구원의 기회를 얻었다고 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가룟 유다,
바울이 세우고 안수했던 장로들 중에서도
믿음에서 떠날 자들이 나올 것을 바울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직분이 믿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은혜 경험이 미래의 신실함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

오늘 교회에 앉아 있다고 해서,
오늘 믿음이 있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내일도 같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는 묻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믿음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믿음인가?”
믿음은 출발점이 아니라 끝까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는
겸손, 경계, 자기 부인이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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