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일까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않는다.”
처음 이 문장을 읽으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육신을 따라 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공동번역 성경은 이 표현을 이렇게 풀어줍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바울은 과거에 예수님을 철저히 인간적인 잣대로 판단했습니다.
그 역시 당시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는 정치적 해방자여야 했고, 로마를 몰아내야 했으며, 민족의 번영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예수는 전혀 달랐습니다.
갈릴리 빈민촌 출신,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이 국사범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바울의 기준으로 보자면, 메시아는커녕 실패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메시아라고 전하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모든 기준이 무너졌습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기준으로 보면 실패였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구원이었습니다.
이후 바울은 더 이상 사람을 인간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구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논리는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고,
그 부활하신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의 능력으로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에 계신 걸까?
사도신경이 말하듯,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요한복음 1장이 제시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으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다.”
결국 답은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말씀이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새롭게 빚으십니다.
바울이 말한 ‘새로운 피조물’은
조금 나아진 사람, 성격이 부드러워진 사람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 말은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입니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창조는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지막에 우리를 정면으로 향해 묻습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고 있는가?
말씀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 욕망, 내 명예, 내 편안함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말씀 밖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조건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예배를 드리는 것, 봉사하는 것, 헌신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이 아니라,
내 삶을 내려놓고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신앙.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우리는 이미 새로운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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