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맡긴 사람만이 오늘을 산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신앙의 전제를 바로 세우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내 사정을 모르신다.
그래서 내가 반복해서 기도해야 하나님이 알 것이다.”
그러나 이 사고방식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신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신처럼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태아를 위해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하듯
이미 알고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는 무슨 뜻일까요?
이 구절은 염려를 미루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걱정하고 자정이 되면 다시 걱정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핵심은 염려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있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자는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을 살아간다.
다시 말해, “내일 염려는 내일이 할 것”이라는 뜻은
시간의 이동이 아니라 주권의 이동을 의미합니다.
내일의 무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성도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음에도
가난 속에서, 병 속에서 살아갈까요?
그것은 버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역시 병의 치유를 세 번 간구했지만
주님의 응답은 단순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는 치병되지 않았지만, 병의 노예가 아니라
병을 통해 더욱 선명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미래를 ‘예측’하며 살지 않고
미래를 ‘위탁’하며 산다.
내일을 책임질 분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을 성실하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이 신뢰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원의 신분에서 흘러나오는 능력입니다.
구원은 감정도, 개념도 아니라 신분의 변화이며,
신분이 바뀌면 삶의 수준도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사람은
내일의 주인이 아니라
내일을 맡길 수 있는 자로 살아갑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결국 세상이 인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저들은 빛이고, 저들은 소금이다.”
왜냐하면 내일의 두려움이 오늘을 삼키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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