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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창세기 9:8-17절 홍수 이후의 언약

by 셀라지기 2025. 12. 17.

창세기 9:8-17절 홍수 이후의 언약

 

방주에서 내린 노아에게 주신 언약

창세기 9:8-17절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홍수 이후의 언약’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주에 이어서, 

방주에서 내린 노아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 말씀의 중심은 생명이었습니다.

 

창세기 9:1-6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즉 생명을 낳는 것과 

생명의 피 흐림을 갚겠다. 즉 생명을 경외하라.

왜 홍수 이후에 주신 말씀이 생명입니까? 

이러한 질문이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부분의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생육하라! 즉 참 생명을 낳는 삶으로 부르십니다.

여기서 생명을 낳다가 히브리어 ‘파라’입니다.

파라는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번성이 아닙니다.

메마른 자리에서 다시 숨이 트이게 하는 것,
절망 속에서, 미래를 품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인 파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이 내 삶에 소망을 주신다는 기대를 갖는 것이 

생육하라!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생명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을 피째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의미는, 생명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하지 못하고, 복 주심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하지 못합니까?

왜 하나님이 복 주심을 믿지 못합니까?

 

말씀에 근거하면, 우리가 다른 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력이 내 안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소망과 기대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즉, 어제까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오늘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할 때, 

우리 안에 있던 단절된 생명의 흐림이 회복되어,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나만의 이야기가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는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웨이 메이커, 길을 만드는 자라 불립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된 인간을 위해
예수님이 오실 길을 만드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되신 것처럼,
우리가 생명을 경외하게 될 때,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 즉, 티비 드라마의 이야기들처럼 

벤처 회사를 설립하거나,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거나, 

사랑이 넘치는 가족와 관계를 가꾸어 가는 이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무겁게 여겨져서 이야기를 포기하는 일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그 다음 사항들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홍해 앞에서 지팡이를 드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지만, 홍해를 가르는 일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러니 홍해를 갈라, 출애굽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은 

쉽다, 어렵다 또는 무겁다, 가볍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믿음으로, 지팡이를 드는 일입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돼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있다면, 

즉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완성하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그 가벼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결과는 이미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바꾸고 새롭게 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제의 분노와 고민을 잊고,
오늘 새롭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비춰할 빛입니다. 

하나님이 이 빛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성도, 즉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세상의 홍수에 흘러가지 않도록, 

우리에게 생명의 방주를 짓는 삶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입니다. 

8절부터 10절을 보면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뿐 아니라
모든 생물과 언약을 세우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언약이 조건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잘하면 하나님이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세운다.”

 

즉, 이제 세상의 안정은 사람의 선함 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은혜 주시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부분을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룟유다 기사를 기억하면 됩니다. 

가룟유다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선함 위에 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사망이었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은혜는 복음에 있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믿어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반복하여, 죄를 범하는 자신에게 실망하여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자신의 삶을 올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누리기 위해서 여기까지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복이 우리 인생 전반에 부어지는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12절부터 16절에 등장하는 무지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주신 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언약을 기억하시겠다는 표입니다.

 

세상이 다시 혼란에 빠질 때,
하나님은 구름 안에 무지개를 보시며 스스로를 붙드십니다.

 

분노보다 은혜를, 심판보다 자비를
선택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자기 결단입니다.

 

이 부분에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종종 흰 옷 입은 성도들의 무리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구름 안의 무지개는 

성도들 안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뜻할 수 있습니다. 

 

즉 성도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보시고,
그 현장에 분노가 아니라 은혜를, 

심판이 아니라 자비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날 때
염려와 걱정에 머물러 있다면, 무지개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 키 한 자 더 할 수 없는 염려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심으로
하나님 앞에 무지개의 증거를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 삶에 세상의 홍수가 그치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홍수는 지식의 섞임이었습니다.
즉, 염려와 걱정이 마음을 덮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할 때

홍수로 심판치 않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혼란이 남아 있습니다. 

믿는 요셉이 노예가 될 수 있고, 

약속을 가진 다니엘도 사자굴에 던져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굳게 언약을 붙잡을 때, 

애굽에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바벨론에 다니엘의 이야기가 시작되듯이, 

우리의 현장에,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혼란을 보고 염려할 것인지,
하나님을 보고 기대할 것인지 말씀입니다. 

 

부디 이번 한 주,
하나님을 기대함으로 세상의 홍수를 거슬러, 

은혜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언약을 기억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염려를 내려놓고, 믿음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우리 안에 무지개 같은 믿음을 두셔서

심판이 아닌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한 주간 생명을 경외하는 삶으로 

현장에서 주님의 자녀임을 드러내게 도와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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