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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창세기 10:1-12 우리의 이름을 둘 장소

by 셀라지기 2026. 1. 4.

 

창세기 10:1-12 우리의 이름을 둘 장소

 

우리의 이름을 둘 장소

창세기 10:1-12

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우리에게 창세기 10장은 읽고 쉽지 않은 장입니다. 

한참을 나열하고 있는 낯선 이름, 낯선 지명들, 낯선 족보들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글자도 의미 없이 기록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족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홍수 이후 인간 문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가? 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조금만 족보의 의미를 히브리어로 살펴보겠습니다. 

 

노아는 위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하나님의 위로가 셈, 함, 야벳으로 이어집니다. 

 

셈은 이름, 명성, 명예라는 뜻을 갔습니다.

함은 뜨거운, 검다, 열기

야벳은 넓히다, 확장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풀어보면, 

하나님의 위로라는 명예가, 

검은 것을 지나서 확장됌을 알게 됩니다. 

 

정리하면, 오늘 본문은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누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족보를 다 보기는 어려우니, 

니므롯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니므롯은 이전 말씀에서 노아를 분노케 한 함의 후손입니다. 

함의 자손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입니다.

노아가 저주한 자는 가나안이었습니다. 

 

니므롯은 가나안이 아닌, 구스의 자손으로 왔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왜 가나안의 후손의 이야기가 아닌, 구스의 자손인가?

이래서 성경이 이상하다는 거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뢰하는 우리는 

‘그렇다면, 왜 말씀이 가나안이 아닌, 구스의 자손에 집중했는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구스는 현재 에디오피아 지역으로 

함과 같이, 검다, 어둡다. 의미를 갖습니다. 

그 후손인 니므롯은 당대의 강력한 문명과 권력을 형성한 

바벨론, 니느웨로 이어지는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세상 권력의 시작이, 니므롯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니므롯의 뜻은 마라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마라드는 반역, 거역, 대적하다 입니다. 

때문에 니므롯은 하나님께 반역한 인류를 대표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

가나안의 길이 아닌 니므롯의 길을 택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무엇이 가나안의 길이고, 니므롯의 길입니까?

 

하나님 앞에 이름을 둔 삶이 가나안의 길이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삶이 니므롯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서론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위로를 누리는 길이, 가나안의 길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조금 자세히 보겠습니다.

본문은 반복적으로 낳았다, 얄라드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얄라드는 단순한 출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지는 역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은 인류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번성 역시, 단순한 인구 증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세대를 넘어 이어짐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니므롯을 보니,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일로 흘렀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니므롯을 용사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용사 깁보르는 전쟁의 영웅, 힘 있는 자, 권력자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니므롯의 힘은 어디를 향했습니까?!

 

성경은 그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다.

 

여기서 여호와 앞에는 경건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채,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 이름을 드러낸 존재라는, 부정적 의미입니다.

 

니므롯은 자신의 힘을 통해 자신의 질서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아 나라를 세웠으며, 그 증거가 11장의 바벨탑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문명은, 

그 이름이 높아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바벨탑과 같은 명성, 부귀 영화를 쌓지만, 

그럼에도, 무너짐을 필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는 참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쌓은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그들이 세운 명성, 이름을 흩으시며,
그곳에서 아브라함을 불내어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내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할 곳, 

니므롯과 반대되는 그곳이 가나안임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지만, 

니므롯과 같이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가나안이 되었습니다.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뜻이 낮아짐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왜 아버지 함의 잘 못에 제가 저주를 받습니까?!

원망하지 않고, 그 저주를 수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를 붙잡은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역경이 찾아올 때, 

니므롯과 같이 그 역경에 하나님의 대적하는 것이 아닌,

가나안과 같이 그 역경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수용할 때,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니므롯과 가나안은 똑같이 함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니므롯은 그 현실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세상의 권력자가 되었지만, 결국 니느웨도, 바벨론도 역사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저주 임에도, 

그 하나님의 뜻에 낮아진 가나안에 온 

아브람은,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이 되고, 

강도라는 뜻의 야곱은 이긴 자로 불리는 이스라엘이 되는 

놀라운 구원의 이야기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마치 가나안과 같이 저주 받은 장소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저주받은 세상에서

커리어, 명성, 성과, 부를 세워가게 됩니다.

 

우리가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니므롯과 같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아브람과 같이 가나안으로 가야 합니다.

 

선지자 요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적국 니느웨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돌이켜 니느웨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하루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자, 

짐승으로부터 왕까지 회개하는 구원이, 니느웨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은 이러한 일들입니다. 

물론 다스시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임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 손에 진 것이 부족하면, 염려, 걱정이 됩니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믿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니느웨로 가면, 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이 믿어집니다. 

내 손에 진 것이 없어도, 염려, 걱정이 사라집니다. 

내 주변에 있는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사람들로 새롭게 보여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람의 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질문할 수 있습니다. 

보내진 현장을 부인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삶을 살것인가?

 

보내진 현장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며, 

역경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에 참여할 것인가?

 

니므롯의 나라들은 크고 화려했지만 결국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나안으로 간 아브람은 

이스라엘로 이어져서, 오늘도 우리 푯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내진 현장을 부인하는 니므롯의 바벨탐에서 나와 

우리의 현장에 문제와 역경이 있더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보내신 현장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기대함으로 요셉, 다윗, 다니엘과 같이 

승리의 이야기를 작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언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주님의 이름이 높임받는 삶을 살게 하소서.

 

사람의 힘으로 쌓은 탑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위에 세워진 인생이 되게 하시고,
오늘도 주 앞에 겸손히 서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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