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일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SNS에서 스치듯 보이던 그의 모습은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누워 있던 장면이었다.
그 무표정은 내게
주변의 사랑조차 닿지 않는,
무관심처럼 보였다.
‘내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주변의 관심이 무슨 상관이냐?’
그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분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안에서 무언가 깨어졌다.
‘나야말로 주변의 사랑에 무관심한 사람이었구나.’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그 사랑을 가까이서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누워 있는 박승일님을 봤을 뿐,
그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수많은 ‘박승일님’을 외면한 채 살아간다.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야.”
누군가가 박승일님에게 전한 말이다.
정말 그랬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마주하는 일 아닐까.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실체를 마주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들의 아픔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승일님을 통해,
사랑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 아픔까지 품는 것이 사랑이다.
박승일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SNS에서 스치듯 보이던 그의 모습은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누워 있던 장면이었다.
내게 그 무표정은
주변의 사랑조차 닿지 않는,
절망처럼 보였다.
‘내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주변의 관심이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한국 농구 국가대표 센터 출신으로,
지도자로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32살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생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눈으로, 눈동자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던 그의 연대는
움직임에 반하여 더욱 커져갔고
결국 한국 최초 루게릭 요양센터 건립을 위한
재단을 세우게 됐다.
지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보아도
이룰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엄청난 스케일의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그는 병에 지지 않고,
더욱 뜨겁게 ‘생의 이야기’를 향해 의지를 세웠다.
그 의지에 감동된 만남들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모인 이야기들이 결국 재단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즉 그의 열정은,
이 세상의 흩어져 있던 루게릭 요양센터의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붙여
‘미래의 이야기를 현실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생명력 있어서,
내 안의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생의 이야기는
조건과 배경으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의지를 세우고,
열정을 태우면,
감동된 사랑이 연결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늘도 일상을 통해 깨닫게 된다.
생의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움직이는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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