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서둘러 나왔는데,
첫 번째 기차가 취소되었다.
공지를 확인하는데, 아무 이유도 없었다.
두 번째 기차도 역시 취소.
이번에도 공지는 없었다.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 삐걱대면,
그날의 기분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세 번째 기차가 연착이라는 안내가 떴다.
‘이번에도 취소되는 건 아닐까.’
불안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5분 후, 기차가 서서히 들어왔다.
기쁜 마음보다 허탈함이 먼저 밀려왔다.
누구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따질 곳조차 없었다.
벨기에에 살다 보면,
이런 ‘답 없는 일’들이 많다.
설명도, 사과도, 대화의 자리도 없다.
그냥 불편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
아내가 협회 문제로 변호사를 선임해 진행 중인데,
건당으로 계약했던 수임료를
시간당으로 바꿨다며 금액을 올려 청구했다.
게다가 자기들 실수로 빠진 이름을 다시 넣으려면
추가 수당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따지라고 했지만,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괜히 싸워봤자, 바뀌는 게 없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아내는 그냥 내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굳어갔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사람 마음이 강팍해진다.
이 나라의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안의 오래된 피로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때, 우연히 한 노래가 들려왔다.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드라마 주제곡, ‘내일은 사랑.’
아버지가 사주셨던 마이마이 카세트,
늘어난 테이프를 볼펜으로 감아가며
수없이 반복해 들었던 그 노래였다.
그때는 단순히 멜로디가 좋아서 들었을 뿐인데,
이제는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이상하게 그 몇 줄의 노래가,
내 안의 분노를 스르르 식혀 주었다.
“때로는 슬프고 힘들다 하여도
견딜수 있는건 사랑 때문 이란걸”
노래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 노래를 듣는 내가 달라져 있었다.
어린 시절엔 그냥 흥얼거렸고,
지금은 그 가사 한 줄이 내 삶을 해석해 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러한 세상에서 견디는 힘이
정의나 이성에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버티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은 따지지 않는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
사랑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아내를 기다리며 차 안에 앉아,
하루를 되돌아봤다.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를
픽업할 수 있는 일로 인해,
내 안에 감사가 일어났다.
노래 한 곡이
내 안의 분노를 식히고,
그 자리에 사랑을 피워냈다.
나는 노래를 못 부른다.
그러나 내 삶은
이 노래와 같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선택한다.
내일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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