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은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다.
그래서 오늘 조금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을 미리 축하하는 날이었다.
생일 상의 중심은 케익이었다.
시내에 살던 시절, 아내가 좋아하던 빵집이 있었다.
다행히 차로 30분 거리에 분점이 있어서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잡채 재료를 샀다.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볶고, 계란찜과 오뎅볶음까지 만들었다.
음식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그때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마지막 수업이 휴강이 되어, 한 시간 일찍 집에 올 수 있다고 했다.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춰 함께 데리러 갈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가 아이 시간에 맞춰 늦게까지 회사에 있었겠지만,
오늘은 그 짧은 여유가 아내에게 주어진 작은 선물 같았다.
회사 정문에서 기다리는데, 아내가 조금 늦게 나왔다.
괜히 성을 내며 “왜 이렇게 늦었어?” 했다.
작은 반전을 주고 싶었는데,
내 연기가 너무 진심 같았던 탓에 아내가 미안해했다.
그 얼굴을 보니 금세 마음이 풀렸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나는 서둘러 상을 차렸다.
미역국을 데우고, 초를 켰다.
아내가 자리에 앉는 순간, 생일 노래가 울렸다.
식사 후, 우리는 벨기에로 처음 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것도 없이, 정말 빈손으로 왔던 날들.
마이너스 통장을 보면서도 염려보다 웃음이 많았던 그 시절.
초반 2년 차의 시간은 무모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믿음과 용기가 있었다.
3년차가 되어 가족 기숙사에 살며
학교 주변을 산책하며, 누렸던 시간들.
그때는 가진 게 없어도 늘 풍족했던 것 같다.
이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6년.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새로운 준비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 나이에 시작하는 새로운 여정이
이상하게도 불안이 아닌 ‘축복’으로 느껴진다.
벌써 벨기에 온 지 13년 차.
한국에서 한 번 태어났고,
벨기에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중년의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 아내의 생일은
단지 한 해를 더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새로운 날개를 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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