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아이의 수업이 한 과목뿐이라, 함께 학교에 다녀왔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마트에 들러 김치 재료를 사고,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었다.
그런데도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학교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다.
강의실 앞에 모여 있는 학생들, 식당가 벤치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학생들.
그들에겐 아직 ‘후회’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시간은 여전히 그들의 편이었고, 그들에게 세상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생기 가득한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과거가 떠올랐다.
나는 많은 기회를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난 아이와 학교를 나오며,
오랜만에 단골 피자집에 들렀다.
3~4년 만이었다.
놀랍게도 가격이 그대로였다.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도 여전했다.
나는 예전과 같은 메뉴를 포장하며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말했다.
“아빠, 빨리 피자 먹고 싶어요. 근데 가격이 똑같았어요!”
“그러게 말이다. 요즘 뭐든 다 올랐는데… 참 신기하지?”
우리는 웃으며, 어떤 피자가 더 맛있는지 이야기했다.
그 한결같음이 주는 기쁨,
변하지 않은 마음이 주는 따뜻함.
그것 하나로 마음이 행복해졌다.
생각해보면, 공동체도 피자집과 같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단지 처음의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성경 속에도 그런 공동체가 있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그들은 가진 것을 나누고, 떡을 떼며,
서로를 형제자매라 불렀다.
그곳에는 계산이 없었다.
단지,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기쁨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다시 자기 유익을 구하기 시작했다.
고린도교회에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라며 파벌이 생겼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27)
공동체는 누가 옳으냐의 자리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 모였기에,
그의 유익이 곧 나의 유익이 되고,
나의 기쁨이 곧 그의 기쁨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는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마치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같은 맛을 내는
그 피자집처럼 말이다.
언젠가 나는,
모두가 즐겁게 모일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곳.
그곳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일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 마태복음 20:26
주님, 피자집의 한결같은 마음처럼,
처음 부르심의 자리를 잃지 않게 하소서.
나의 유익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을 위해 모이게 하소서.
사라진 향기가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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