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5시 반, 부엌 불빛만 켜 놓은 채
나는 조용히 아침을 준비했다.
아내는 발표 준비로 늦게까지 깨어 있었기에
조금 더 자게 두고 싶었다.
“주님, 오늘도 당신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기도로 하루를 열고 있을 때,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단정히 준비된 모습.
그녀의 마음은 이미 회사로 향해 있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묘하게 고요한 아침이었다.
집에 돌아와 전날 쓴 글을 퇴고했다.
그런데 문장이 엉키고, 머리는 멍했고,
집중은 오래가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다시 차를 마셔도 흐려진 생각은 걷히지 않았다.
‘이럴 땐 몸을 움직이자.’
운동을 시작했지만 몸이 둔했다.
평소보다 동작이 느리고, 근육은 쉽게 피로해졌다.
건강엔 이상이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의 리듬이 풀려 있었다.
성경을 함께 나누기로 했던 분이 떠올라 연락을 드렸다.
그분도 오늘은 어렵다고 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문득 들렸다.
‘오늘은 멈추라.’
이상하게도 그 음성이 불편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파이널컷을 열었다.
편집해야 할 영상이 눈앞에 있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접었다.
대신 청소를 시작했다.
내게 청소는 마음을 정리하는 작은 의식이다.
이불을 찍찍이로 청소하고,
먼지를 털고,
바닥을 청소기로 돌리고,
물수건으로 물건들을 닦을 때
마음의 파편들도 함께 닦이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저 ‘청소를 했다.’
그뿐이었다.
늦은 오후, 아내의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었다.
“감사합니다.”
짧은 기도 속에 안도의 고백이 담겼다.
집으로 돌아와 피자를 만들고,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아내는 내일 있을 발표로 마음이 분주했다.
산책은 미루었다.
대신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골때녀’를 보며 웃었을 텐데,
오늘은 TV도 켜지 않았다.
그냥 침대에 누워
‘오늘은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생각하다가,
8시 반, 어느새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어제 하루를 떠올리니,
묘하게 모든 게 이어져 있었다.
특별히 잘된 일도, 무너진 일도 없는 하루.
그저 느리고, 조금씩 어긋난 하루.
그런데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런 날도 있구나’ 하고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마음이, 어제의 은혜였다.
문득 사무엘상 3장이 떠올랐다.
어둠이 가득한 성소 안에서
소년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던 장면.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그 음성이 하나님의 것임을 처음엔 알지 못했다.
세 번이나 부르시지만,
그는 엘리에게 달려갔다.
그날 밤, 하나님은 소리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반복해서 부르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밤 속에서
사무엘은 듣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어쩌면 어제 내 하루가 그랬다.
분주한 손을 내려놓게 하시고,
무언가를 해내려는 의지를 멈추게 하시며,
'듣는 법'을 다시 가르치신 하루였다.
하루가 느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 흘러가더라도
그날은 결코 비어 있는 날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멈춰 있을 때에도
우리 안의 리듬을 조율하신다.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신다.
그래서 오늘의 깨달음은 이것이다.
'멈춘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나를 다듬고 계신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완벽하다.
그분은 빠름보다 깊음을,
효율보다 성숙을 빚으신다.
오늘도 그분의 손끝에서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빚어지고 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 시편 46편 10절
주님, 느린 하루를 통해 당신의 일하심을 봅니다.
모든 일이 멈춘 것처럼 보여도 당신은 제 마음을 다듬고 계셨습니다.
조급함 대신 평안을, 불안 대신 신뢰를 가르쳐 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완벽한 타이밍에 제 하루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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