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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51010 다시 은혜를 가르치시다

by 셀라지기 2025. 10. 11.

다시 은혜를 가르치시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주식 시장이 열렸다.
벨기에에서 한국 거래소에 접속하려면 새벽 두 시.
이곳의 생체 리듬을 거스르는 시간이다.

 

‘오늘은 분명 오를 거야.’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렸다.
간이 작아 큰돈은 못 넣었지만,
잠깐의 거래로 5%의 수익을 얻었다.

 

8개월 만에 찾아온 행운.
그런데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아침 6시 평소처럼 눈을 떴지만,
늦게 잔 탓에 머리가 멍했다.

아침 묵상 시간을 갖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래서인지 ‘올랐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문득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서 만난 

열 명의 나병환자가 떠올랐다.

 

그들 모두 병에서 나음을 받았지만,
그 중 한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표현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어쩌면 가장 은혜 받을 자격 없어 보이던 이방인 한 사람이
진심으로 엎드려 감사를 올렸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에는 감격했지만,
정작 그 기적을 베푸신 분을 잊은 것이다. 

 

나는 그 아홉 중 하나였다.
주식의 수익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이 주신 하루의 은혜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모양이니, 하나님이 내게 재정을 맡길 수 없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탄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기도했다.
“주님, 저는 참 어리석습니다.
문제가 있을 땐 주님을 찾지만,
평소에는 문제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나니,
시선이 내 걱정에서 주님께로 옮겨졌다.

 

 

오늘은 아이가 늦게 등교하는 날이었다.
2시간의 수업을 위해 왕복 3시간을 오가야 했기에
내가 바래다주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를 데려다 주는 이 상황에 

불평이 아닌, 감사가 일어났다. 

 

“아빠가 너를 바래다 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아이는 친구들과 채팅하느라 듣지 못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새벽의 수익으로도 느낄 수 없던 행복으로 가득 찼다.

 

아이를 내려놓고 차 안에서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하나님은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셨다.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며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꼈다.

 

‘그래, 이것이 교회지.
이렇게 말씀으로 서로를 세워주는 것,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지.’

 

자연스레 생각이 이어졌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은
결국 이런 사랑과 순종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거야.’

 

 

돌아오는 길, 퇴근길 정체 속에서도 마음은 평안했다.

아이를 내려놓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 바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묵묵히 일하고 돌아오는 아내를 보며
그녀를 직접 맞이할 수 있는 사실에 감사를 느껴졌다.

 

‘하나님, 이렇게 감사할 일들이 많은데,
저는 왜 걱정만 바라보며 살았을까요…’

 

그때 마음에 깨달음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내가 걱정을 붙잡고 사는 삶이 아니라,
은혜를 기억하며 순종하는 삶을 원하신다.

문제를 해결하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 위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사는 인생을 원하신다.

 

그날 밤, 말씀을 다시 펼쳤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누가복음 17:19

 

하나님은 내게 ‘더 큰 수익’이 아니라
‘더 깊은 감사’를 가르치고 계셨다.


그분은 오늘도 나를 빚으신다.
'감사로 돌아왔던 그 한 사람으로.'

 

주님, 제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기쁨의 날에도, 평안의 시간에도,
은혜의 주인이신 주님께 먼저 돌아가는 자 되게 하소서.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하며,
그 감사로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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