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3시 30분.
어둠은 아직 방을 절반쯤 차지하고, 가로등 하나가 창틀 너머에서 길게 흔들리고 있었다.
‘주님, 아무리 보고 싶으셔도… 이 시간은 너무 이른 것 같아요.’
툴툴거림 같은 기도가 새어 나왔다. 그마저도, 친밀함이 허락한 투정이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6시 30분.
어둠이 걷히고 은은한 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커피를 내리고 말씀을 폈다.
오늘 본문은 이상할 만큼 곧장 가슴으로 들어왔다.
말씀과 같이 ‘살고 싶다’는 소망과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한 자리에 있었다.
의심의 뿌리를 더듬어 보니, 하나님과의 동행이 아니라 일의 ‘결과’를 신뢰하려는 마음이었다.
‘이 일들이 잘 해결되겠죠?’—계산은 은근했고, 믿음은 얇았다.
감기 기운이 돌아 몸이 묵직했고, 집중은 자꾸 흩어졌다.
머리를 식히려 창문을 열고 찬 공기를 들이켰다. 운동을 조금 하고, 바닥을 훑듯 청소를 했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엔 잠시 맑아졌지만, 손이 멈추자 다시 멍해졌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지?’
걱정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요즘 주식 시황을 자주 본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어느새 내일의 생계를 가늠하는 눈금이 되었다.
조금 오르면 들뜨고, 떨어지면 불안하다. 기도 중에도 차트의 선이 머릿속을 가른다.
간이 작은 나는 공격적으로도 못 가고,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른 길을 기웃거렸다.
카메라를 들고 책상 정리, 커피 내리기, 짧은 묵상 클립을 찍어 보았다.
그러나 업로드도 전에 비슷한 영상이 주르륵 떠오르자, 의욕이 꺼졌다.
‘이걸 왜 하지? 다들 이미 하고 있잖아.’
이전에 끄적여 놓은 글들을 열어도, 오래된 문장들이 나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침의 걱정처럼, 결국 ‘동행’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기도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내는 대사관 만찬 초청으로 종일 분주했다.
그녀도 오늘은 숨 돌릴 틈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결과가 아니라 임재를 신뢰하는 싸움.
저녁 7시, 늦게 끝난 아들을 데리러 갔다.
차창 밖으로 노을이 길게 늘어졌다. 차 안은 조용했고, 공기는 따뜻했다.
“요즘 아빠는 좀 불안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창밖을 보며 웃었다.
“돈 워리, 비 해피.”
한 문장이, 쓸데없이 복잡한 마음을 단숨에 풀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 을 미리 대비하느라, 나는 오늘의 은혜를 자꾸 흘리고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지방대 출신인 아내를 여기까지 이끄신 분도,
국제학교 한 번 다니지 못한 아들을 외국 의대까지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매일 그 손에 이끌려 살았는데, 나는 또다시 세상의 자로 내일을 재고 있었다.
불안의 본질은 ‘상황’이 아니라 ‘불신’이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아내를 마중 나갔다.
도로의 불빛이 반짝이고, 차 안에는 잔잔한 찬양이 흘렀다.
‘수고한 아내를 환대하자.’
걱정을 잠시 맡겨 두고, 오늘 하루를 버틴 사람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바빴지만, 감사했어.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도와주시는 게 느껴졌거든.”
아내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완전하진 않았지만, 여전히—그리고 충분히—하나님과 동행하려 애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돈 워리, 비 해피.”
평안은 걱정이 하나도 없을 때 오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순간’에서 오는 선물이었다.
내일의 불안보다, 오늘의 은혜를 붙드는 연습.
주님은 오늘도, 한순간도 멈추지 않으셨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립보서 4:6–7
주님, 내일의 계산으로 오늘의 은혜를 흘리던 마음을 거두어 주옵소서.
상황의 그래프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게 하시고,
결과의 증명이 아니라, 동행의 평안으로 숨 쉬게 하옵소서.
아내의 자리, 아들의 걸음을 오늘도 지키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 ‘걱정의 시뮬레이션’이 아닌 ‘감사의 실천’으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의 한 걸음 안에, 주님과 함께 걷는 기쁨을 배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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