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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빛이 있으라 — 다시 시작하는 법 (창세기 1:1-5)

by 셀라지기 2025. 6. 7.

빛이 있으라

 

요즘, 공허함을 자주 목격한다.
사람들 눈동자 속에, 뉴스를 덮는 자막 속에, SNS 타임라인 속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서도.
혼란은 이제 낯설지 않은 배경이 되었고, 공허는 그 위에 덧칠된 감정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정치도 경제도 모두 불안정하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한국의 정치 격랑, 끝없는 기술 전환 속에
우리 모두는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아무리 대비해도 마음을 붙들기 어렵다.
미래를 준비하다가 현재를 놓치고, 현실을 지키려다 마음이 무너진다.

이렇게 우리는 혼돈의 끝에서 공허를 만난다.

 

성경의 첫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다.

이 짧은 문장이 세상의 모든 시작을 품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 의미도 정의도 없는 그 혼돈 속에서 하나님이 계셨다.

 

그리고 다음 문장이 이렇게 이어진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참 놀랍다. 하나님이 계신데도 혼돈이 존재했다. 공허도, 흑암도.

 

그러나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오늘 나는 이 한 문장에서 위로를 받는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혼돈 속에 하나님은 이미 운행하고 계셨다.
그분은 부재中이 아니라, 은밀中에 계신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침묵처럼 느껴져도,
그분의 영은, 흑암 위를, 인생의 심연을 지나고 계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드디어 말씀하신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을 부르신다.
그 빛은 단지 어둠을 밀어내는 조명이 아니다.
그 빛은 방향이고, 질서이고, 목적이다.

 

빛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삶의 이정표다.

 

공허한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목표를 잃었거나,
혹은 성공했는데도 의미가 없거나.
그럴 땐, 마음 안에 흑암이 깃든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수면을 운행하고 계시고,
여전히 그 흑암을 향해 말씀하신다.
“빛이 있으라.”

 

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지런했고, 목표도 분명했다.
하지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에서 상처받았다.

인생이 무너졌다. 공허해졌다.

 

그러나 그 공허의 바닥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진짜 삶이 시작됐다.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이윤보다 섬김을 선택했다.

그의 삶에 빛이 밝혀 졌고, 그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빛으로 나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저녁 시간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로 기록된다.

 

어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공허는 파괴가 아니라 창조 이전의 여백이다.

 

그러니 오늘, 공허한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빛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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