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의 시작은 ‘아바(אָב)’였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그 고백이 단순한 습관인지, 아니면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히브리어로 성경을 다시 바라보기로 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첫 글자, ‘알레프(א)’.

모든 말의 문을 여는 그 글자는 조용하지만, 온 우주의 무게를 실은 듯한 침묵의 소리입니다.
숫자로는 1, 혹은 1000. 소리 없는 자음이지만, 가장 앞에 놓이는 글자.
그건 마치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숨결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알레프는 ‘아바(אָב)’라는 단어의 첫 자입니다.
그러니 이 알레프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는 그림이었습니다.
알레프는 황소의 머리를 닮았습니다.

강하고, 묵직하고, 앞장서는 존재.
그림 안에는 리더십과 힘, 침묵과 희생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알레프에 이어지는 글자, 베이트(ב).
그건 ‘집’을 의미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아버지’(אָב)는 곧 ‘집의 힘’입니다.
지붕만 있는 집이 아니라, 중심이 있는 집.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장소,
말씀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관계,
비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
이제야 이해되는 듯합니다.
예수께서 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셨는지.
그분은 하늘 집의 힘이셨고,
그 힘 안에 우리는 자녀가 되어가는 길을 초대받은 것이지요.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 (롬 8:15)
그 말씀 안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바’는 단지 부름이 아니라, 거함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거하고, 아버지의 말씀 안에 머물며,
그분의 권위 아래에서 자유롭게 숨 쉬는 삶.
우리는 종종 성전을 건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성전은 ‘장막’, 곧 아버지의 말씀 안에 머무는 자리입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하며 여호와의 도를 배웠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는
그 말씀으로 지어진 보이지 않는 집,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품이 열려 있습니다.
히브리어 첫 글자, ‘알레프’는
헬라어의 ‘알파’가 되었고,
우리에게는 ‘시작’이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그 시작에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집에 살고 있는가?
그 집의 힘은 무엇이며,
그 집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그 질문의 자리에서
‘아바’라 부를 수 있는 은혜를
오늘도 다시 새깁니다.
조용하지만 강한 그 이름,
‘아바’.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는 가장 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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