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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ah

목사 그리고 목사직을 읽고 결단한 사임!

by 셀라지기 2025. 6. 30.

목사 그리고 목사직

 

사람들이 묻습니다. “굳이 담임자리를 그만두어야 할까요? 어느 교회나 이러한 문제는 있습니다.”

이 물음에는 부러움도, 때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저버린 채, 사람의 영광을 좇는 것이 목회이겠습니까?”

 

목사직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의 자리입니다.

사명은 사라져도 버티면 급여는 나오고, 사람들의 칭송도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양심의 노크를 묵살하며 자기를 합리화하는 순간, 목사로서의 내적 권위는 사라집니다.

그것은 타락의 시작이며, 주님 앞에서 더 이상 목회자로 존재하지 않는 비극의 문턱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일곱 가지 질문은 내가 그 자리를 떠나게 한 마지막 이유였습니다.
나는 매일 교회 안의 ‘정치’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정치란, 누군가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주님의 이름을 거래하는 슬픈 풍경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저라는 목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내 안을 찌르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나를 흔들었던 가혹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왜 목사로 살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 앞에 회피할 수 없었습니다. 내 안에도 사람의 인정과 목회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욕망이 주님의 십자가보다 무겁게 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이미 그 자리는 ‘성소’가 아니라 ‘무대’가 되고 있었습니다.

 

책 속의 두 목회자의 비유, 아론과 모세. 아론은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고자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모두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해를 무릅쓰고 금송아지를 부수었습니다. 누구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나는 담임목사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나 스스로 만든 금송아지를 부쉈다고 믿고 싶습니다.

어떤 이는 “어리석은 결정”이라 말했지만, 내게 그것은 참으로 경건한 고독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독은 두려운 것입니다. 더 이상 주류가 아닙니다. 스포트라이트도, 영향력도 사라집니다.

 

목사가 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직을 끝까지 순결하게 감당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가 떠난 것은 패배가 아니라, 더 큰 순명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있는가?”

 

이재철 목사님의 마지막 질문이 내 마음을 때렸습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영광과 성공은 언젠가 불 속에 던져질 것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이 길이 제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혹시 당신도 목회자로 살고 있다면, 혹은 교회라는 공간에 몸담고 있다면,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무엇을 위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 끝까지 묻고 또 물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금송아지를 부수는 모세의 길을 걷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스스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지는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십자가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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