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자녀를 위함’인가?
서울의 지하철에서 본 한 아이의 모습—작은 어깨에 얹힌 에어팟 맥스와 아이폰, 그리고 그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부모의 삶. 이 한 장면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우리는 이 거울 앞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려 하는가?’
자녀에게 최고의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일까요? 그렇다면 그 ‘최고’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명품’으로 상징되는 소비를 통해 자녀를 대변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시각에서 볼 때, 자녀는 ‘투자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업’입니다. 유럽에서 본 헝클어진 머리와 편안한 후드 하나로도 기쁨을 잃지 않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비주의 부모, 불안의 자녀
한국 사회에서 ‘좋은 부모’란, 얼마나 자녀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느냐로 평가됩니다. 맥북, 아이폰, 브랜드. 그것은 교육이자 사랑이며, 때로는 생존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녀의 내면을 진정으로 돌보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명품을 쥐여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첫 번째 진리입니다.
오늘의 한국 부모들은 자녀를 통해 ‘자신의 불안을 치유’하려 합니다. 그것은 자녀에게 사라져가는 존재감을 확인하고, 비교 속에서 ‘나는 이 정도는 해낸 부모’라고 위안받으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비는 자녀의 자존감을 세우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어깨에 ‘기대’라는 이름의 짐을 지웁니다.
성경은 자녀를 양육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이 교훈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자녀가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양육입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유럽의 한 부모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네가 갖는 것보다, 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이 한 문장이, 이 시대 부모들에게 던져야 할 예언자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갖고 싶니?”라고 묻는 대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은 명품이 아닌, 인격을 물려주는 부모의 시작점이 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의를 구하는 삶을 보여줄 때, 자녀는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귀에 울리는 것은 에어팟이 아니라, 부모의 진심 어린 질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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