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의 동남아는, 어김없이 습하고 뜨거웠다. 그러나 이번 여름, 그 뜨거움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인근에서 총성이 울렸다. 역사적 유산을 두고 벌인 다툼, 하지만 사실 그것은 유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지키려는 민족과 정치의 욕망 때문이었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총성이 울리기 전에, 말씀은 울릴 수는 없었을까?” 분쟁의 당사자들만을 탓하기 이전에, 이 지구 위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그런 울림을 세상 속에서 사라지게 만든 공범은 아니었을까?
자기 이름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사라지다
이 전쟁의 본질은 땅이 아니고, 사원이 아니며, ‘정체성’이다. 자기 민족의 정체성, 정치 지도자의 정당성, 그리고 국민을 향한 선전용 감정의 결속. 모두 “우리가 누구인가”를 증명하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싸움이다. 그러나, 신자는 그 싸움에서 과연 어디에 설 수 있을까?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밖에 있지만 안에 있는’ 존재, 곧 나그네로 부름받은 백성이다. 그렇다면 성도의 시선은 ‘국익’이 아니라 ‘진리’이어야 한다. 나의 민족, 나의 문화, 나의 신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니라 우상이 된다.
태국과 캄보디아 모두 불교 국가이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다. 그들의 아이들이 지뢰밭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무너지는 일이며, 그것은 내 신앙과 무관한 일이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성지’들이 피로 물들었다. 그곳들이 우상이 되는 순간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 피의 역사 위에 세워진 종교적 상징물은 더 이상 성스러운 곳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돌로 지은 성전을 찾지 않으시고, 깨어진 마음과 평화를 추구하는 자를 찾으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국가의 욕망이 아니라, 복음의 정체성을 따라야 한다.
총보다 말씀이 앞서는 세상을 위하여
이 분쟁의 결말은 결국 다시 협상일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 트럼프의 중재, 유엔의 유감 표명, 아세안의 담담한 입장. 하지만 우리 신자의 몫은 그저 뉴스를 관망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국가가 어디까지 싸워야 하며 어디서부터 물러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또 하나의 질문을 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부터 기도해야 하는가?”
국경을 지키는 군인은 국가의 의무를 다한다. 그러나 복음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칼을 피하고 말씀이 울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민족감정은 위로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분노의 방아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하리라.” 총보다 말씀이 앞서는 세상, 지뢰보다 이해가 먼저 심어지는 평화. 우리는 그런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날이 오도록 기도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히 속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며, 진정한 샬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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