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에 가려진 존재의 진실
우리는 어느새 자신을 '수치'로 설명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측정되는 몸무게와 신장에서 시작하여, IQ, 학점, 연봉, 몸무게, 심지어는 팔로워 수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진정 우리의 존재는 그러한 수치로 정의될 수 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수치나 평가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엔디 워홀과 “비정상”의 영광
엔디 워홀은 IQ 86이라는 낮은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낮음이 결코 그의 가능성의 척도가 아님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팝아트는 예술의 흐름을 바꾸었고, 대중성과 정체성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숫자로 자신을 재단받기 전에, 그 숫자를 무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이들이 등장합니다. 말을 더듬었던 모세, 양치는 청년 다윗, 나귀에 실려 온 예언자 스가랴… 그들 모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부족하고’, ‘약하고’, ‘평범했던’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셨습니다. 세상이 내리는 평가와 하나님의 부르심 사이엔 늘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그리고 자신을 너무 이른 판단과 잣대로 재단합니다. “수학에 약하다”, “말이 느리다”, “나이는 많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잣대 너머를 보십니다. 사라진 자존감을 회복시키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이사야 42:3). 당신의 백성에게는, 나이가 많든 작든, 학벌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불리는 이름, 다시 시작되는 삶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너무 일찍 끝맺습니다. “이제는 늦었어”, “나는 안 돼”, “내가 뭘 새로 시작해…”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늘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가 포기한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분은 가능성의 문이 아니라, 존재의 문을 여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문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낸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부르심에 반응하는 일입니다. 숫자와 판단의 껍데기를 벗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뒤늦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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