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밀어 주신 주님.
창세기 19:1-11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소돔입니다.
지난 주 소돔의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롯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의인 열 사람이 있다면,
롯과 소돔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해가 질 무렵, 롯이 집을 나섭니다.
그즘에 두 사람이 소돔에 도착합니다.
이들은 나그네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천사들이었습니다.
소돔의 죄악을 확인하기 위해 도시를 찾은 것입니다.
그때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성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닙니다.
도시의 지도자들이 앉는 자리였고,
재판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공적 장소였습니다.
우리를 이 구절을 통해
롯이 소돔 중심에 속했음을 알게 됩니다.
롯이 두 사람을 보자 곧, 일어나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낮추어 절하며 말합니다.
“내 주여, 부디 종의 집으로 오십시오.
발을 씻으시고 하룻밤 머무신 뒤, 아침 일찍 길을 떠나십시오.”
두 사람이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아니다. 우리는 광장에서 밤을 보내겠다.”
그러나 롯이 매우 강하게 재촉하여 붙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소돔의 밤은 낯선 사람이
잠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롯은 억지로라도 그들을 자신의 집에 들렸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이 롯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롯은 그들을 위해 잔치와 같은 음식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급히 무교병을 구워, 식탁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이 눕기 전에,
온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노인도 모였습니다.
가까운 곳 사람만이 아니라, 먼 곳 사람들도 모였습니다.
그들은 롯의 집을 둘러싸, 소리칩니다.
“오늘 밤 네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겠다.”
여기서 “상관하다”는 표현은
성적 폭력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나그네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버리고, 짓밟으려 했습니다.
당황한 롯이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내 형제들아, 제발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아직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두 딸이 있다.
그녀들을 너희에게 내어주겠다. 너희 마음대로 하라.
그러나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으니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롯은 그들을 동성애 성폭력자들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딸들을 보이며, 그들을 지키려 했습니다.
롯은 나름대로 의롭게 살려던 사람이었지만,
악한 도시의 방식으로 인해, 이상한 판단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소돔 사람들은 롯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물러나라. 이자가 외지인으로 들어와 살더니 이제 우리를 판단하려 드는구나.”
롯은 소돔의 성문에 앉아 그들을 판단하는 지위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못하는 롯이,
동성애를 지향하는 소돔에서 그들과 같은 판단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돔의 무리가 롯을 밀치고,
달려들어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손을 내밀어,
롯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 후 문밖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모두 시야가 혼미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지칠 때가찌 문을 찾고,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소돔은 심판은 결정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의 성문, 상관하다, 눈이 어두워짐을, 중심으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성문입니다.
1절을 보면,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습니다.
성문은 히브리어로 샤아르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권세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재판이 이루어지고, 장로들이 앉고,
거래가 이루어지며, 도시의 방향이 결정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구절은
롯이 성문 곁에서 쉬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돔의 삶에 깊이 들어가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롯이 소돔에서 지위를 얻는
과정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을 떠난 롯은 소돔을 향해 장막을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장막을 도시 안으로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소돔의 문화를 경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소돔의 화려함과 편의를 바라게 되었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새, 도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큰 전쟁을 통해서 롯에게 경고를 주셨습니다.
롯은 소돔의 문화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롯은 소돔 편의를 떠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전쟁 후 소돔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을
도시에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롯은 소돔 성문에 앉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하실 정도로 악한 도시의 장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움입니다.
본문을 통해 알게 되는 롯은, 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그네를 보고 일어나 영접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돔의 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선한 양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소돔의 악을 알고도,
떠나지 않고, 소돔의 성문에 앉는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시편은 1편이 이 부분을 해석해 주십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우리의 앞에도 여러 성문이 있을 것입니다.
물질, 인정, 성공, 자녀의 성문 등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매이는 순간
롯과 같이 믿음을 지키려 해도, 결국 화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게 되면,
가나안의 패자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 또한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해야할 여호와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죄인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고,
그 사랑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되는 이 말씀을
우리 앞에 홍해가 있더라도, 풀무불과 사자굴이 있더라도,
이 말씀을 즐거워할 때, 우리는 성경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현장에서 누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를 믿고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언합니다.
다음은 상관하다 입니다.
5절을 보면, 소담 사람들이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상관하다는 야다입니다.
원래 기본 의미는 “알다”입니다.
그러나 문액에 따라 성적 관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소돔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말한 것은
그들을 알고, 그들을 배우고 싶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소돔 사람들은 그들을 성폭행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도시는 나그네를 환대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주변 도시들의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나그네를 환대하는 일은
당시로써는 당연한 문화 였습니다.
그런데, 나그네를 환대하여,
그들을 바르게 야다하여,
그들로 통해 바르게 배워야할 도시가
그 네그네를 욕망의 도구로 전락시켜,
배경이 없는 그들을 잘못된 야다로 짓밝으려 했던 것입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였다.”
이것은 소수의 범죄자가 아닙니다.
도시 전체의 영적 상태입니다.
어른도 젊은이도, 가까운 자도 먼 자도 함께 모였습니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공동체입니다.
죄를 죄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도 많은 나그네를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은 무심히 그들을 지나칩니다.
하지만, 성경은 무정함도 죄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나치는 나그네를
바르게 야다하고, 환대하길 원하십니다.
즉 이 하나님의 말씀 뒤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많은 복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우리가 우리의 상황과 처지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하게 될 때,
우리 역시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할 뿐만 아니라,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구원받게 되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눈이 어두워짐입니다.
11절은 “그 눈을 어둡게 하니”라고 전합니다.
눈이 어두워짐은 산웨림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눈앞의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혼미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오늘 본문에서 소돔 사람들이 문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사용되고,
열왕기하 6장에서 엘리사가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했을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문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를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눈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체의 눈은 떠 있었지만,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욕망의 길은 보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영적 어둠은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양심이 불편합니다.
그 다음에는 변명합니다.
그 다음에는 익숙해집니다.
마지막에는 분노합니다.
네가 우리의 판관이 되려 하느냐?!
혹시 이러한 내용이 익숙하십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표현들입니까?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겠습니까?
영적 소돔일 수 있습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곧 유황불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이유로 지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 것 만으로도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롯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습니다.
롯의 구원은 롯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그 긍휼 역시 롯이 알지 못한 곳에서
아브라함이 깊은 기도를 통해 허락된 긍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 앞에서 자신을 돌아 봐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형통함과 믿음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끌어당기셨기 때문입니다.
소돔의 악인들로부터 롯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능히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악인의 길이 아닌, 의인의 길을 즐거워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춤을 추시며,
우리의 길을 자랑하고,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소돔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도시는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환대가 사라졌습니다.
부끄러움이 사라졌습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악을 악이라 말하는 이들이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문 앞에서도, 문을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유황불의 심판입니다.
이러한 소돔의 밤은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롯이 문밖에서 밀리고 있을 때,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 그를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효과적이고, 영리한 교섭이 아닙니다.
소돔에 있다면, 더 안전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열어 두신 문을 찾는 것입니다.
그 문은 하나님 앞에서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구했던 것들을
내려놓는 온전한 회개가 있을 때,
우리에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돌아오는 한 주 롯은 건지신 하나님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영리한 교섭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구하며,
복 있는 자의 길로 나아가시길 축언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소돔의 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악한 세상을 탓하기 전에, 그 어둠에 익숙해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롯처럼 애매한 자리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복 있는 자의 자리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시고,
주의 법의 기이함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즐거이 따르는 한주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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