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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늘(주간 메시지)

일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창세기 18:1-15)

by 셀라지기 2026. 5. 4.

 

 

일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창세기 18:1-15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극동 지역의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 장막 문에 앉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동안 성취되지 않았던 아들에 대한 약속을 

24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제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에게 

소망을 두고 살려고 하는데, 

하갈과 사라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아브라함은 사라와 하갈 사이를 중재하며, 

남은 생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년 이 시기에 

사라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4년 동안 기한이 없던 약속이, 구체적으로 변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지쳤던 아브라함의 마음에 다시금 소망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문득, 혹시나 

내년 이 맘 때 아들을 얻지 못하는거 아닐까? 라는

염려와 불신이 일어나니, 

 

사라와 하갈이 장막에 들어가 쉬고 있을 해가 강한 오후에, 

장막 문에 앉아, 하나님께 약속을 잡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기도를 마치고 눈을 들어보니, 

갑자기 맞은 편에, 세 사람이 서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나타남에 놀았지만, 

자신의 기도와 연결하여 생각하니,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사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급히 달려나가, 몸을 땅에 굽히며 말했습니다.

 

“내 주여, 제가 주께 은혜를 입었다면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물을 가져오겠습니다.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제가 떡을 조금 준비하겠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신 뒤에 길을 가십시오.

그리고 제 염려에,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네 말대로 하라.”

 

 

 

아브라함은 급히 장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했습니다.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드시오.”

 

1 스아는 약 7.3리터입니다. 

21.9리터의 가루는 세 사람을 위한 양이 아닙니다. 

큰 잔치를 위한 준비입니다.

 

그리고 가축 떼로 달려갔습니다.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골라 하인에게 요리를 부탁합니다. 

 

그후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를 그들 앞에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그들을 섬기며, 서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묻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장막 안에 있습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네게로 돌아오겠다.
그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장막 문 뒤에 있던 사라가 그 말씀을 듣고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었고, 내 주인도 늙었는데, 이제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라가 왜 웃었느냐?
왜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정합니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아니다. 네가 웃었느니라.”

 

이 말씀은 사라를 부끄럽게 하려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사라의 서글픈 웃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내년 이 맘 때, 사라의 웃음을 

기쁨과 찬송의 웃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이 문장이, 본문 전체의 제목과 같습니다.
다음 구절들은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세, 

마지막으로 사라의 웃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장소를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

 

마므레는 힘, 비옥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마므레 곧, 힘과 비옥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머문 그 자리임을 알게 됩니다.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상수리나무는 큰 나무들, 참 나무들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큰 나무는, 그늘과 쉼을 제공하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따라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은,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가던 자리인 동시에,

삶의 뜨거운 한 복판에서 

그에게 그늘을 주어던 자리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하나님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오심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1절에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2절에서는 “사람 셋”이 아브라함 앞에 서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는 사건을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즉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 안으로 

찾아오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일상의 사건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를 조금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디도서 1: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등을 기억하여, 나그네 대하기를 즐겨하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나그네를 지나치면, 

하나님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극동 지역의 뜨거운 정오입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모든 활동이 귀찮아지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보고 달려가 몸을 굽혔습니다. 

 

그리고 머물러 달라고 간청합니다.
물을 가져와 발을 씻기고, 음식도 크게 준비합니다.

 

이러한 모습,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귀히여겼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섬겨라. 용서하라, 

대접하라. 긍휼히 여기라. 정직하라. 감사하라. 선을 행하라. 

 

우리가 이 말씀들을 기억하여, 

일상에서 실천할 때,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 

 

 

6절부터 8절까지를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접대하는 자세가 드러납니다. 

 

“급히 장막으로 가서”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은 대충 자기 시간에 맞추어서 

하나님을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존귀한 자를 대접하는 자세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예배 자세였습니다. 

 

 

 

예배의 수준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좋은 것을 드리려는 태도에서 그러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주인인 아브라함이, 

그들 옆에 서서 시중을 드는 

종의 위치를 취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이웃을 섬기려 한다면, 

스스로 종의 자세를 취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때 상대가 교만할 수도 있고, 

우리를 천히 대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일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이 말씀을 좇은 아브라함을 

가나안의 패자가 되게 하신 것과 같이 

우리로 그 현장에서 존귀한 자가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미자막으로 사라의 웃음입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때 사라가 장막 문 뒤에서 듣고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녀의 웃음의 뜻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해석해 보면, 

 

“이제 와서요?”
“이 나이에요?”
“그런 즐거움이 남아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녀의 웃음을 아셨습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하나님이 속으로 한 사라의 웃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책망만을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의 현실은 늙고, 태가 끊긴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녀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즉 사라에게 내년 이 맘 때, 

능치 못함이 없는,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주시려 한 것입니다. 

 

때문에 사라는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말했지만, 

하나님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 맘때에, 그녀의 서글픈 웃음을 

기쁨과 찬양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라는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으로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는 특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던 장소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일상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면,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라. 섬기라. 용서하라.
대접하라. 긍휼히 여기라. 정직하라.
감사하라. 선을 행하라.

 

우리가 말씀을 좇는 곳이,

하나님의 만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달려갔고, 몸을 굽혔고, 가장 좋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그에게 이러한 환대는, 예의가 아니라 예배였습니다.
그의 섬김은, 손님 접대가 아니라 예배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십니다.
사람이 고마워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때문에 낮아질 때, 

그 낮아진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 자세를 낮추어 베드로의 발을 닦고 계신 

주님이 계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자, 

사라의 서글픈 웃음이, 기쁨의 웃음으로 변했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에게도 엘 샤다이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도 사라와 같은 서글픈 웃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대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보며, 

 

이제는 늦었다는 생각.
더 이상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불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생각을 들으십니다. 

 

하지만, 책망으로만 끝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대저 여호와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느리라.”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와 같은 현장에 보냈다면, 

그 광야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들이 가득합니다. 

 

홍해를 가를 계획, 하늘의 만나와 반석의 물을 이미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보며, 

소망이 없는 삶을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고, 격려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가, 우리의 참된 예배의 자리가 될 것이고, 

그때 우리의 서글픈 웃음이, 기쁨이 웃음으로 변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귀히 대접하듯,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께 드리려지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사라와 같은 서글픈 웃음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신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우리의 불신과 두려움을, 믿음과 감사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일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일상이 주님을 만나는 거룩한 자리가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일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창세기 1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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