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리품이 아닌, 별 아래 들린 약속
창15:1-6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가나안의 패권 전쟁은
아브람의 참전으로 끝이 났습니다.
끌려갔던 사람과
빼앗겼던 재물도 찾았고,
무엇보다 조카 롯을 구했습니다.
아브람이 큰 승리 후 돌아오는 길에,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나와,
전리품은 당신의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브람이 전리품을 갖는 일에 이견이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댓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받지 않았습니다.
실 한 오라기라도, 자기 손에 움켜쥐지 않겠다고 합니다.
훗날 누군가가 “내가 아브람을 부하게 했다”라고
전해지는 일을, 조금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아브람이 아닌,
하나님이, 승리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겨우 318명으로 여러 나라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이후 아브람을 부요케 하실 것이 분명한데,
전쟁의 작은 이득을 취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아브람의 이러한 점이 믿음의 조상답습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전리품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자기 이익을, 하나님을 위한 것을 포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자신의 믿음을 생각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믿음 대로, 전리품의 실 하나라도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세상의 상식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누구나 아브람을 속일 수 있는 지혜없는 자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전쟁을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소돔 왕 앞에서 행한 아브람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물론 아브람도 후회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전쟁에서 전리품을 얻지 못했으니,
소식을 듣게 된 식솔들은 괜한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고,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318명의 병사들도
왠지 모를 섭섭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아쉬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아브람에게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혼자가 된 시간,
아브람은 ‘정말 잘한 것일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다고 해서,
흔들림이 전혀 없이 강직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결단한 사람일수록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더 깊은 의문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겠다.”
그 누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방패요, 상급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역해 보면,
“아브람아, 네가 전리품을 취하지 않았다고,
너의 수고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내가 너의 믿음을 보았으니,
이제 내가 친히 너의 방패와 상급이 되겠다.
318명으로 가나안의 왕들을 격퇴한 것 같이,
앞으로도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오히려 아브람 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이 무엇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셨는 지 알고 계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묻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종 엘리에셀이 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아브람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해 주신, 그 약속된 후사를 원했습니다.
가나안으로 오기 전에
하나님은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흐렀는데,
아브람에게는 여전히 자녀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제게 아직 아들이 없습니다.
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너희 후사가 아니다.
너희 몸에서 날 자가 너희 후사가 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장막 밖으로 이끄셨습니다.
밤하늘은 깊었고, 셀 수 없이 만큼의 많은 별이 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아라.
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
어쩌면 뜬 구름 같은 음성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에게는 여전히 자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믿어졌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기서 의는 아브람이 잘해서 얻은 상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에 승리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용사와 같이
두려움이 없던 사람도 아니었고,
의심이 전혀 없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계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옳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그 믿음을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오늘 본문 중에서, 우리의 이해를 넓여주는
3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는 1절의 방패입니다.
מָגֵן(마겐)은 전쟁에서 몸을 막아 주는 방패, 보호물을 뜻합니다.
전투에서 화살과 칼을 막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마겐은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을 덮어 보호한다는 뜻으로 확장됩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전쟁 이후의 평안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승리한 뒤에는 당연히 있을 보복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나는 너의 방패다” 말씀하신 것은
추상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아브람아, 내가 너를 승리케 한 것과 같이
앞으로도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아브람이 전리품을 통해
다음 보복 전쟁을 대비하는 일을, 거절하자!
하나님이 친히 그의 방패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아브람에게 “방패”는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의 모든 이들이 너를 대적해도,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겠다”
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아브람과 같이
세상의 이익을 통해 앞날과 노후를 대비하는 것 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선택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방패가 되어,
온 세상이 홍수에 잠길 상황에서라도,
우리를 구원해 주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람과 같이 눈 앞의 이익이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을 선택하심으로
세상 그 무엇이 해할 수 없는 참 방패를 얻으시길 축원합니다.
두번째는 6절의 믿다입니다.
הֶאֱמִן(헤에민)은 אָמַן(아만)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아만은 단순히 “존재를 인정하다”가 아닙니다.
견고하다, 확실하다, 신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아멘(אָמֵן)”입니다.
때문에 “아멘”은 “맞습니다” 정도가 아니라,
“그 말씀은 견고합니다. 나는 그것 위에 서겠습니다”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의미는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손에 쥔 것이 없음에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보다 더 견고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람은 늙었습니다.
사라는 임신하지 못 했습니다.
눈앞의 현실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람은
자기 현실의 상황과 조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견고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6절 믿다. 헤에민의 의미입니다.
즉 믿음은 “잘 되겠지”하는 낙관이 아닙니다.
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정도가 아닙니다.
아만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입니다.
우리도 아브람과 같이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말씀을 믿게 될 그때,
세상에서, 사방의 우겨쌈을 당한 것 같다 해도,
하나님의 반석 위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승리를, 기대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6절의, 의입니다.
צְדָקָה(체다카)는 보통 “의, 의로움, 바름”으로 번역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에서 “의”는 단순히 철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무언가가 관계 안에서 바른 자리에, 위치한 상태를 뜻합니다.
헬라적 사고에서는 의를 “도덕 점수”처럼 생각하지만,
히브리적 사고에서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합당함, 바름, 신실함입니다.
즉, 의는 단지 “죄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상태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이 신에게 무언가를 드리고, 무언가를 수행하여
신의 호의를 얻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6절의 의는 다릅니다.
아브람의 의는 전쟁 공로 때문도 아니고,
전리품을 거절한 도덕성 때문도 아니고,
특별한 종교 의식을 행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이는 “믿음도 공로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아브람이 자기 손에 아무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는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
바르다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절 마지막의 “여기시고”도 중요합니다
하샤브는 계산하다, 간주하다, 평가하다. 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자로 평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흠 없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실력이나 가능성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위에 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가능성의 세계에서,
우리가 내 실력 만큼만 보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불의하다 평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배경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필요한 위치를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평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상천하지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될 때,
이것이 우리의 의,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형편에 매이는 순간,
세상에서 꿈을 잃어 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자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는 순간,
꿈을 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복된 소식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고 해서,
늘 마음이 강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결단했다고 해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중요한 선택을 한 뒤에,
모든 사람이 우리를 외면하는 어둠이 찾아오고,
누구도 위로하지 않는 밤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도
이러한 순간에는 여지없이 흔들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도 그랬습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전쟁터로 달려갔습니다.
적들과 싸웠고, 목표했던 롯을 구했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재물을 되찾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큰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그 전리품 중 실 한 오라기라도 가지지 않겠다!
선언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승리를 얻었지만
실제적인 상급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걸었는데…
빈 손으로 끝난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되자,
아브람의 마음에서 의구심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믿음인가…?
괜한 호기와 객기였을까….?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무슨 의미입니까?
“너가 전리품을 포기했지만,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너희 고백이, 내게 예배가 되었고,
이제 내가 너의 예배를 받았고,
이제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 보면
세상이 주는 보상을 포기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 기회, 재물, 편안함을
하나님을 위해, 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선택 뒤에는
두려움과 염려가 찾아옵니다.
“내가 손해 본 것은 아닐까?”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앞으로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예배를 받았고,
이제 내가 너의 참 방패가 되어주겠다.”
우리의 인생을 지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닙니다.
돈이, 사람이, 경력이, 계산이,
우리의 방패가 될 수 없습니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면
모든 것이 뚫리는 것입니다.
참 방패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큰 상급이다.”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친히 너희 필요를 채우겠다”
세상은 말합니다.
“믿는 네 유익이 무엇이냐?”
“믿어서 무엇을 얻었어?”
“기도해서 어떤 응답을 받았어?”
그러나 믿음은 다릅니다.
아무것도 없어서도, 두렵지가 않은 것이 믿음입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사자굴 앞에서도
신기합니다. 두렵지가 않습니다.
금, 은, 보화가 아무리 많아도,
죽음 앞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또 아무것도 없어도 염려되지 않습니다.
홍해가 앞을 막고,
타국에 포로로 끌려가도
이상합니다. 염려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에게는
무엇을 얻었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내 아버지로 믿어지는가가 중요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아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종교가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요,
가장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종종 우리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언제 주시겠습니까?”
“얼마나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별과 저 높은 산을 보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라. 내가 너의 참 상급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이 세상에 우리를 해할 자 있겠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상급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보다
견고히 붙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아픔은, 전리품을 포기한 것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후사가 없는 것이 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네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을 장막 밖으로 이끄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여기서 본문의 믿음이 나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견고히 붙들었다는 뜻입니다.
현재 자녀가 없고, 자신과 아내는 나이가 많음에도,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자기 현실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아이를 얻은 것도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현실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이러한 현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할 만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평안 가운데 미래를 기대하는 것!
이것이 아만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즉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래 너가 내 아들이다, 딸이다.”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전쟁 공로를 의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전리품을 거절한 도덕성을 의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의롭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잘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림이 없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심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체가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면
우리는 결코 무너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상급이 되시면
우리는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을 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붙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돌아오는 한 주는
세상의 보이는 것들이 아닌,
두려워말라, 내가 너의 방패와 상급이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서서,
하나님을 기대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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