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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정리

헌금

by 셀라지기 2025. 10. 26.

헌금

 

우리는 흔히 헌금을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단순히 내 소유를 일부 떼어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값주고 사셨음을 고백하는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내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성막이 세워졌을 때,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즉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어야 했습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헌금을 허락하신 이유는 실용적이면서도 신학적이었습니다. 먼 곳에 사는 이들이 절기 제사를 위해 곡식과 짐승을 직접 성전까지 가져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가까이에 이르면 반드시 다시 재물로 바꾸어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결국 헌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예배 안에 포함된 제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라” 하신 명령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헌금은 성전 곳간에 저장되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생활을 유지하고, 성전을 보수하며,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돕는 데 쓰였습니다. 다시 말해,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진 동시에 공동체를 살리는 사랑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 하나님은 돌로 지은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성도 자신을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헌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 이상 곡식과 재물을 성전 창고에 쌓아두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의 헌금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드러나는 헌신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입증됩니다. 헌금은 바로 이 자리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드리는 돈이 아니라, 말씀에 감동된 마음이 이웃을 살리고 세우는 사랑으로 변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헌금입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은 성도들이 말씀에 감동하여 가진 것을 팔아 서로 나누며, 유무상통하는 삶을 살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했기에, 물질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헌금을 맡아 공동체를 돌보았고, 성도들은 사도들을 신뢰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마치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헌금은 종종 왜곡됩니다. 복을 얻는 수단처럼, 교회 재정을 확보하는 장치처럼, 심지어 직분을 얻는 수단으로까지 전락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 헌금은 본질을 잃습니다. 성도와 지도자 사이의 신뢰는 무너지고, 말씀을 들어도 감동하지 못하는 메마른 상태, 곧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렸을 때처럼 죽은 예배가 되고 맙니다.

 

헌금은 십자가 복음에 감동한 자들이 드리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헌신이고, 의무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약속대로 응답하십니다. 말씀을 간직한 자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부어 주심으로, 그분이 참으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십니다.

 

헌금은 돈이 아닙니다.
헌금은 헌신입니다.
헌금은 내 것을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말씀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우리의 헌금은 십자가 은혜에 대한 감격의 노래가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 초대 교회처럼,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유무상통의 공동체로 회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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