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어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말씀은 불과 같습니다. 히브리어 ‘에쉬(אש)’. 이 짧은 단어 속에 감춰진 진리는, 인간의 지성을 깨뜨리고, 심령 깊은 곳까지 태워 버리는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불’이라 하면 흔히 심판이나 지옥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불, ‘에쉬’는 단순한 형벌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룩한 하나님과의 언약이며,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불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의 말씀을 먹고, 나의 불로 불타오르라.”
하나님의 불은 말씀이며, 언약이다
‘에쉬(אש)’는 알레프(א)와 쉰(ש)이라는 두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알레프은 하나님을, 쉰은 불이나 이빨을 상징합니다. 곧 ‘에쉬’는 하나님의 불, 하나님이 직접 씹고 삼켜 주시는 정결의 도구이며, 동시에 그 불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4장 24절은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소멸한다’는 말은 ‘아칼(אכל)’, 곧 삼킨다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불은 우리를 삼키십니다. 그러나 그 불은 단지 파괴가 아니라, 정화와 회복의 불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그분은 성령의 불, 곧 말씀의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이 불은 씨처럼 뿌려져 마음밭에 심기며, 이 불을 받아 먹는 자들은 태워져 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금같이 새로워집니다.
렘 23:29에서도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십니다. 이 불은 교훈이요, 경고이며, 동시에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에쉬’는 창세기 15장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더라.”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로서 불이 등장한 것입니다. 곧 불은 하나님의 언약이며, 말씀의 확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불을 우리 안에 던지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바로 이 ‘불’이 혀같이 갈라지며 임한 순간입니다. 단순한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게 하시는 성령의 불이었습니다.
말씀을 먹고, 불로 타오르라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신 두루마리를 먹고 예언하게 됩니다. 요한도 계시록에서 책을 먹고 예언하게 됩니다. 불은 곧 말씀이며, 말씀은 먹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타오를 때, 그 불은 나를 정결케 하며, 죄를 태우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빚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에쉬’를 먹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부정한 것을 태우고, 정결케 함을 믿고, 읽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불은 겉을 태우는 불이 아니라, 속을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이 됩니다. 이 불은 지식의 불이 아니라 생명의 불입니다. 때문에 이 불은 논쟁의 불이 아니라 사랑의 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성령을 통해 그 말씀에 불을 붙이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불을 붙들고, 그 불로 자신을 태우며, 그 불로 세상을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툼과 분쟁에서 나와 이 일에 집중할 때, 우리는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현장에서 사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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