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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ah

10.15 부동산 규제를 보는 성도의 시선

by 셀라지기 2025. 10. 22.

 

집값이 오르고, 정부는 강력한 규제를 내놓았습니다.

시장에 맡기기엔 과열이 심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논란이 이어집니다. 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겐 투자 수단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삶의 거처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는 집의 본질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에게 집은 단순히 투자의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소속됨은 곧, 그곳에서의 삶과 이야기를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는 당시 발전했던 하란에 머물던 자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불러 낙후되었던 가나안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옮긴 아브라함의 거처에는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후에도 아브라함의 집은 여러 번 옮겨졌지만, 제단은 늘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의 삶 속에 집이 중심인가, 아니면 제단이 중심인가?
부동산 정책은 우리의 집을 규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 곧 우리의 마음은 규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번 정책을 보며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장 자율을 억제하는 조치에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탐욕이 만든 시장의 왜곡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규제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성도는 먼저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가나안으로 향하는 자인가, 아니면 여전히 하란에 머무는 자인가?

 

만약 아브라함이 하란에 남았다면, 그의 제단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우상을 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단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예배가 되었고, 그 제단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곧 ‘이긴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방식은 투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 기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세상 눈에는 우리의 거처가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제단을 쌓는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그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크고 화려한 집이라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 집은 결국 공허한 껍데기일 뿐입니다.

 

집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중심은 집이 아니라 제단이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은 하란의 화려한 거처입니까, 가나안의 제단입니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제단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이스라엘’ 곧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동산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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